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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부외과 의사의 길
언론사 울산경제 작성일 2023-08-18 조회 45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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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흉부외과 의사의 길
 

박상섭 동천동강병원 흉부외과 과장
 
 
  지난 6월 한 흉부외과 의사의 죽음이 알려지면서 많은 분이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했다. 고인은 흉부심장혈관학회 분야 중에서 대동맥 수술에 권위자인 고(故) 주석중 선생이다. 기사를 통해 접한 것은, 그날도 병원으로부터 응급 연락을 받고 자전거를 타고 병원으로 향하다 트럭에 치여 운명했다. 우리나라의 대동맥 수술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킨 것으로 평가받은 분이다. 같은 흉부외과 의사의 길을 걸으면서 안타깝고 여러 가지 상념들이 스쳐 지나갔다.


  아직도 흉부외과가 무슨 환자를 진료하고 치료하는지 모르는 분이 많다. 언젠가 "흉부외과는 흉터 보는 과냐?"라고 묻던 할머니도 계셨다. 흉부 발음이 잘 안 된 어르신은 "흥부 과가 어디 있어요?"라면서 외래 진료실을 찾기도 했다. 그때는 속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 '맞아요. 흉부외과 의사들은 착하고 가난한 흥부 의사들이에요.'

  흉부외과는 폐, 식도, 늑막, 흉벽 질환 및 종격동, 심장, 혈관 등의 질환을 진료하고 수술하는 분야다. 필자가 흉부외과를 지원할 때만 해도 의사의 직업적 소명 의식이 조금은 남아 있었다. 전공할 과(課)를 선택하는 기준은 수련이 편하고 개원이나 봉직하기가 싶고 경제적으로 더 유익해 보이는 것이 아니었다. 당시에는 내·외·산·소(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과)를 메이저 과목으로 불렀고, 먼저 이런 과를 지원하고 수련받고 싶어 했다. 특히 외과는 타과보다 1년이 더 긴 4년을 수련받아야 하는데도 말이다.

  의사 사회에서도 3D 과가 있어서 흉부외과도 인기 없는 과 중 하나다. 필자가 수련받던 시절만 해도 한 해 1,700명의 의사가 배출될 때 흉부외과 전공의는 70명 이상까지 지원하던 시절도 있었다. 지금은 의사가 한 해 3,000명 이상 배출되는데도 흉부외과에는 30명이 채 지원하지 않는다.

  언론에서 자주 흉부외과 의사 부족을 외치지만 지원자는 늘지 않는다. 국가에서 수련 과정에 경제적 지원을 해 주어도 크게 효과가 없다. 국가가 해결하는 방법에는 한계가 있다. 이미 젊은 의사들은 힘든 일은 싫고, 상대적으로 수입이 적은 과도 싫어한다. 전문의 자격을 취득해도 평생 힘들지 않게 생활하고 싶어 한다. 그러다 보니 흉부외과는 꺼리는 과가 되고 말았다. 물론 최근 하지정맥류 등으로 개원해 수입이 좋은 의사도 있고, 소수의 상급 종합병원에 근무하는 분들은 흉부외과 수술의 수가 차별 지원 혜택을 누리고 있지만, 지방 종합병원에 근무하는 흉부외과 의사에게는 그것도 그림의 떡이다.

  각종 드라마에서 흉부외과는 단골 메뉴로 등장하는 과이고 의사들이다. 극적 장면이 필요한 특성상 드라마 소재로는 안성맞춤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수술하는 의사의 긴장감, 스트레스, 과중한 업무 등은 오히려 과를 지원하는 데 악영향을 미쳤다. 지금도 필자의 선배는 전공의가 없어서 대학병원에서 정년퇴직 시점까지 당직을 서야 했다. 과에 후임 교수 요원이 없어 정직 퇴직 후에도 다시 근무를 이어가야만 했다. 의사에 대한 존경은 땅에 떨어져 있다. 그런데도 역설적으로 자식을 의사로 만들려고 혈안이 되어 있고, 의사가 되어도 인기 과에 들어가기 위해 경쟁이 심하다.

  과거에는 의사들에게도 교사들과 마찬가지로 스승 사(師)자를 붙여 불렀다. 지금은 사회적으로 진정한 권위가 온데간데없다. 권위주의를 없애려다 아버지의 권위, 가장의 권위, 부모의 권위, 스승의 권위, 어른의 권위 등이 사라져 버렸다. 흉부외과 의사들은 나름 남들이 하지 않고 가지 않는 힘든 길을 걷고 있다. 이들을 인정해주고 격려하고 존경한다면 더 많은 후배가 지원하고, 환자들을 잘 치료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주석중 선생의 죽음은 한 사람의 죽음이 아니다. 필자가 수련받을 때만 해도 대동맥박리 수술의 사망률이 40~50% 정도였는데 이를 2% 이내로 줄였다고 한다. 정말 위대한 업적을 이룬 소중한 의사가 아닐 수 없다. 그분을 통해 치료받을 수 있는 수많은 사람의 생명이 함께 죽은 것이나 진배없다. 소명감을 가지고 오로지 환자의 생명을 구하는 데만 헌신하는 제2, 제3의 주석중 선생 같은 흉부외과 의사가 배출되기를 소망한다. 그리고 이들이 긍지를 가지고 적절한 대우를 받으며 진료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기를 기대한다.

 
<2023년 8월 18일 금요일 울산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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