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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와 플로깅
언론사 울산경제 작성일 2023-04-05 조회 45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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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와 플로깅
박상섭 동천동강병원 흉부외과 과장

 
 
  플로깅이라는, 생소할 수도 있는 단어 하나를 소개하고 싶다. 플로깅은 달리기를 하면서 쓰레기를 줍는 운동을 말한다. 플로깅은 '이삭 등을 줍는다'라는 뜻의 스웨덴어 'plocka upp'와 영어의 '달리기'를 뜻하는 'jogging'의 합성어이다.

  필자는 동천동강병원에 근무하면서부터 점심시간을 이용해 동천강변에서 걷기운동을 시작했다. 외래 진료실에 오래 앉아 있다 보면 답답하기도 하지만 시간을 쪼개서라도 건강을 챙겨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점심시간은 한 시간이라 간단히 음식을 준비해서 가기도 하고, 아니면 구내식당에서 일찍 식사를 마치고 운동을 시작한다.

  강변을 걷다 보면 참 많은 쓰레기가 눈에 들어온다. 구청에서 공공근로사업으로 간헐적으로 줍기도 하지만 항상 쓰레기는 기분을 상하게 했다. 그러면서도 쓰레기를 주워야지 하는 마음은 들었지만 실제로 실천하기는 참으로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러다가 코로나19 유행이 시작되고 나서는 마스크를 착용하고 걸었다.

  어느 날 문득 이런 마음이 들었다. 내 사랑하는 어린 외손자, 외손녀가 무슨 죄가 있어서 태어나자마자 마스크를 쓰고 살아가야 하나? 이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먹먹해져 왔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유행한 것도 인간의 무분별한 환경파괴로부터 온 것이고, 갈수록 바이러스 유행은 심해져 갈 것인데, 우리 다음 세대들이 앞으로 살아갈 날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래서 환경을 지키기 위해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무얼까를 생각하다가 점심시간에 운동하면서 쓰레기를 주워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점심을 간단히 해결하고는 한 손에는 검은 비닐봉지를, 다른 손에는 쓰레기 집게를 들고 병원 문을 나선다. 널려있는 쓰레기를 열심히 줍다 보면 등에는 땀이 흐르고 어느새 봉지가 차고 넘친다. 아직도 줍지 못한 쓰레기는 많지만, 오후 진료 시간에 늦지 않도록 발걸음을 돌려야 한다. 돌아서 쓰레기가 치워진 깨끗한 강변을 걸어오는 발걸음은 가볍고 기분이 상쾌하다. 운동을 하는 모든 분이 좋은 기분을 느낄 것 같아 흐뭇하기도 하고, 내가 치운 쓰레기만큼 자연을 오염시키는 양이 줄어들 것으로 생각하면 뿌듯하기도 하다.

  플로깅을 시작한 지도 어언 1년이 되어간다. 비가 오거나 수술이 있는 날을 제외하고는 열심히 했던 것 같다. 운동하다가 "수고하십니다"라는 인사라도 받으면 기분이 더 좋아진다. 그러다가 언제부턴가 운동 기구가 있는 곳에 마대로 만든 쓰레기 수거함이 세워져 있는 것을 보았다. 표현하지 않지만, 나의 작은 행동에 누군가 동참을 하고 있다는 생각도 했다. 쓰레기 줍는 모습을 보고 버리는 분들이 줄어들 것이라 생각하니 쓰레기 없는 거리가 되리라는 희망을 품어본다.

  아름다운 자연을 보전해 다음 세대가 좋은 환경에서 살아가게 할 의무가 우리 부모 세대에게 있다. 줍지는 않아도 최소한 버리지만 않아도 좋겠다. 비닐과 페트병, 각종 플라스틱 음료수병, 유리병은 우선해서 줍지만 수 없이 널려있는 담배꽁초는 아직도 널려있다. 수풀에 숨어있거나 강물에 잠겨있는 쓰레기들을 보면 안타까움에 발걸음이 무겁다. 혼자서 다 치울 수가 없다.

  '뭐 좋아하는 사람은 뭐밖에 안 보인다'라는 말이 있다. 어디를 가든지 도로에 버려진 쓰레기들이 눈에 먼저 들어온다. 언제쯤 쓰레기 없는 깨끗한 도시로 변화될 수 있을까 싶다. 집에서는 음식 쓰레기를 줄이라고 잔소리가 늘었다. 행사할 때도 일회용품이나 가능한 쓰레기를 줄이려는 방법을 생각한다.

  우리는 코로나19 팬데믹의 엄청난 충격과 고통과 힘든 시기를 보냈다. 이성을 가진 우리는 이런 고난 앞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는 코로나 이전 시대와는 우리 삶과 의식과 행동이 바뀌어야 당연하지 않겠나 싶다. 마스크 착용과 모임 제한이 풀린다고 이전 상황으로 그대로 원상 복귀한다면 고난의 의미가 없을 것이다.

  합리성과 효율성을 추구하던 시대는 가고 회복력을 향한 적응이 요구되는 시대가 도래했다고 말한다. 오늘도 한 손에 집게를 들고, 한 손에는 비닐봉지를 들고 힘차게 강변으로 향한다. 모든 시민이 자연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보존하고 회복하는 일에 동참했으면 하고 바라본다.

<2023년 4월 5일 수요일 울산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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