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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매일매일 고민하며 살아가는 의사들
언론사 경상일보 작성일 2023-02-08 조회 456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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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고]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매일매일 고민하며 살아가는 의사들
▲오동규 동강병원 호흡기내과 분과 중환자의학 세부 전문의
 

  모든 사람은 태어나서 살다가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한다. 이러한 삶의 과정에서 누군가는 질병으로 인해, 또 다른 누군가는 큰 사고로 인해 생명이 위태롭게 되어 중환자실을 찾게 된다. 중환자실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는 환자들이 어쩌면 마지막일 수도 있는 생의 희망을 붙잡기 위해 치열한 싸움을 하는 곳이다.

  중환자실이 어떤 곳이라고 생각하는지 지인들과 이야기해본 적이 있다. 안타깝게도 아직 많은 사람이 ‘중환자실은 죽기 전에 거치는 곳’이라는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잘 갖춰진 중환자실에서는 환자 10명 중 8명이 회복해 일반 병실로 간다.

  예전과 다르게 중환자실에서의 치료 성적이 눈에 띄게 향상된 것은 의학, 그중에서도 특히 중환자의학의 발전 덕분이다. 요즘에는 체외막산소화장치(ECMO)를 이용해 심장과 폐의 기능이 완전히 정지한 환자를 살려 내기도 하고, 간, 신장, 심장, 폐 등의 장기가 회복되지 못할 정도로 심각하게 손상된 경우에도 이식 수술로 새로운 삶의 희망을 이어 나가기도 한다. 또 고난도의 치료를 능숙하게 수행할 수 있는 중환자의학 세부 전문의 수가 늘어 중환자실에서의 치료 성적은 큰 폭으로 개선되고 있다.

  중환자의학 세부 전문의는 고도의 감시 장비와 생명 유지 장치를 이용해 중환자실에 입원한 환자들의 회복을 돕는 의사다. 중환자실에 입원한 환자들은 패혈증, 호흡부전, 중증 외상, 큰 수술 등으로 인해 간, 뇌, 신장, 심장, 폐 등 여러 장기의 손상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다. 이에 중환자를 제대로 진료하기 위해서는 주요 장기의 상호작용에 대한 이해, 각 장기의 기능을 보존하기 위한 첨단 의료 장비에 대한 지식과 경험, 복잡한 임상·윤리적 문제들에 대한 포괄적 이해와 접근이 필수적이다. 이러한 능력을 함양하기 위해서는 각 분야의 전문의 취득 후 일정 기간의 중환자실 진료 경험이 꼭 필요하다. 이런 이유로 대한중환자의학회에서는 내과·마취통증의학과·소아청소년과·신경과·신경외과·심장혈관흉부외과·외과·응급의학과 등 8개 법정 전문과목 전문의 취득자 중 소정의 검증된 중환자의학 수련 프로그램을 이수하고 진료 역량을 갖추면 중환자의학 세부 전문의 자격을 부여하고 있다. 2022년 말 기준 우리나라에서는 1774명의 중환자의학 세부 전문의가 활동하고 있다.

  중환자의학 세부 전문의가 중환자실에 상주하면 치료 성적을 크게 향상할 수 있다. 2012년 발표된 관련 연구에서 의료기관 내 중환자 전담전문의가 한 명이라도 근무하는 경우 중환자실 환자들의 사망률이 14.1%였던 반면 그렇지 않으면 35.8%로 나타났다.

  이뿐만이 아니다. 중환자의학 세부 전문의는 삶의 마지막 순간에 놓인 환자들이 인간적인 품위를 잃지 않고 불필요한 치료로 고통받지 않도록 환자와 가족들의 곁에서 조언하고 상담하는 역할도 수행한다. 최선의 치료에도 불구하고 중환자실로 입원하는 환자 10명 중 2명은 회복하지 못하고 사망하는 현실 속에서 중환자를 진료한다는 것은 삶과 죽음 경계에서 치열하게 고민해야 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중환자의학 세부 전문의는 첨단 의료 기술에만 관심을 두는 것이 아니라 연명의료결정제도나 완화의료와 같은 사회적, 윤리적 이슈들에 대해서도 깊이 고민하며, 생의 마지막 순간에 환자와 가족들이 최선의 윤리적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전체 중환자실의 60% 정도만이 중환자 전담전문의를 보유하고 있다. 중환자실 10곳 중 4곳은 중환자 전담전문의를 못 갖추고 있다. 이는 중환자의학 세부 전문의 또는 중환자 전담전문의 제도에 대한 홍보가 부족한 것이 가장 큰 원인이다. 여러 가지 복잡한 사회적, 경제적, 제도적 문제들이 얽혀 있는 것이 또 다른 원인으로 들 수 있다. 하루빨리 이러한 문제들이 해결돼 중환자실에서 치료받는 모든 환자가 양질의 치료를 받게 되기를 희망한다.

 
<2023년 2월 8일 수요일 경상일보 오동규 동강병원 내과·호흡기내과 분과 중환자의학 세부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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