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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박영철 동강의료재단 이사장 일대기 2008/7/9
언론사 울산제일일보 작성일 2008-07-09 조회 65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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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아, 철아, 우리 철아”


제19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신부의 적극성·활달함 훗날 동강 의료재단 설립 기초 돼
재학 중 결혼 해 생계를 책임지던 어느 날 6·25전쟁 일어나

 신랑이 곤장을 몇 번 더 맞고 난 뒤에야 깜짝 놀랄 대답이 모기만한 소리로 나왔다.
 ‘첫날 밤은 첫날 밤이 아니라 둘째날 밤이었어요….’
 ‘???’
 친구들은 무슨 말인지 몰랐다.
 ‘…’
 신부는 더 할말이 없었다.
 잠시 서로들 얼굴을 쳐다보다가,
 ‘와! 핫, 핫. 으, 하하하’
 온 동네가 떠나갈 듯, 진짜 폭소가 터졌다. 신랑은 내려 달라고 발버둥을 쳤다.
 신부의 활달함이 극명하게 나타난 사건이다. 신부의 이러한 적극성과 여유로움과 활달함이 훗날 동강 의료재단의 설립에 기초가 되었다.
 내조의 공이 아니라 의학도라기보다는 문학도에 가까운, 감성의 청년을 의료재단을 설립하여 의사로서의 직분을 다하도록 한 것이다. 이런 사업가적 자질을 두고 손이 크다고 한다. 신부는 신혼 초부터 손이 컸었다.
 서까래에 매달려 있는 신랑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젊음과 우정을 불태웠다. 비록 남의 집에 세를 들어 사는 단칸방이었지만 행복은 이런 것이었다.
 그러고서 며칠이 지났을 때 이번에는 한 밤중에 경복고등학교 동기생들이 쳐들어왔다.
 신혼살림에 숟가락도 제대로 갖추지 못 한 것을 빤히 알면서도 신부의 당황하는 모습을 보고, 신랑을 못 살게 굴려고 갑자기 찾아온 것이다. 신부는 혼자서 밥상 차리고, 술상 보고 주인집에 가서 그릇 빌려오고 혼줄이 났었다. 셋집인 것을 알면서도 찾아온 친구들을 주인집에서는 잘 대해주었다. 여느 신혼살림이 아니라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학생의 신혼살림이어서 특혜를 준 것이었다.
 김상준(전 서울시 교육감), 당시 경성사범학교에 입학하여 해방 후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과에 다니던 경복고등학교 동기 동창의 회고담이었다. 장가든 학생이 부럽기도 했었다는 친구들의 짓궂은 장난이었다.
 ‘재학 중에 결혼을 한 내가 학생과 직장인, 가장(家長)의 일까지 맡고 열심히 생활해 나가던 중, 엄청난 사건이 벌어졌다.
 바로 6·25 전쟁이 일어난 것이다.
 해방 후부터 지식층이 좌·우로 분리되어 이념 싸움에 열중이었던 것은 누구나 알고 있던 사실이지만 같은 민족끼리 서로의 가슴에 총부리를 겨눌 일이 생기리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었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던 나는 순식간에 일어난 역사적 사건 앞에서 속수무책이었다.’
 예과를 마치고 본과 졸업을 몇 개월 앞둔 1950년 6월 25일이었다.

글 / 박해룡


▶[프롤로그]
▶[제1화] 슈바이처를 꿈꾸다
▶[제2화] 동강 선생의 제자
▶[제3화] 어머니의 자장가
▶[제4화] 법도 있는 집안
▶[제5화] 보통학교, 소학교, 국민학교, 초등학교(1)
▶[제6화] 보통학교, 소학교, 국민학교, 초등학교(2)
▶[제7화] 보통학교, 소학교, 국민학교, 초등학교(3)
▶[제8화] 경성 제2고등보통학교
▶[제9화] 경성 제2고등보통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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