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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박영철 동강의료재단 이사장 일대기 2008/7/4
언론사 울산제일일보 작성일 2008-07-04 조회 64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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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아, 철아, 우리 철아”


제17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생활의 여유 찾자 집안 어른들 결혼 서둘러
대 여섯 번 맞선 본 후 지금의 아내 만나

 사람 된 도리란 자식이 장성하면 부모님에게 손자를 안겨드리는 일이다. 동강 선생도 예외가 아니었다. 집안의 어른들은 귀한 장손의 나이가 스물이 넘었는데 빚을 내서라도 당연히 장가를 들여서 손자를 보아야 한다고 하였다. ‘부모님께 기대지 않고 학자금을 해결하며 생활의 여유도 찾게 되자 집안 어른들은 나의 결혼을 서둘기 시작했다. 홀로 객지 생활을 하는 내가 안쓰럽기도 하고 또 스스로 생활을 꾸려나갈 정도의 직장을 가졌고 일찍 가정을 꾸려 좀 더 안정된 생활을 하기 원하는 부모님의 성화에 못 이겨 몇 번의 맞선을 본 후 지금의 아내를 만나 결혼했다.’ 1940년대 말 우리나라에서 비록 서울이라는 서양문물이 가장 많이 들어온 도시라고 해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의 학생이 아직 학생이면서 결혼했다는 것이 그렇게 큰 뉴스는 아니었다. 서울의 한 복판 종로거리에는 전차가 다니는 큰 길 뒤쪽에는 초가집이 드문드문 있었을 때였다. 서울을 벗어나 조금만 시골로 내려가도 아들이 스무 살만 넘기면 부모들은 농사일의 노동력 확보를 위해서라도 며느리를 보려고 중매쟁이를 찾았다. 지금의 결혼상담소 소장이나 상담원을 말한다.
 동강 선생은 부친이 개화된 신지식인이어서 맞선이라도 보았지 심한 경우는 결혼식을 올리고 첫날 저녁에야 신랑과 신부가 등잔불로 서로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특히 방 밖에서는 동네의 아주머니들이 동네 할머니들의 잔소리에도 불구하고 첫날밤을 치르는 방문 창호지에 구멍을 뚫고 족두리 벗기는 모습까지만 훔쳐보는 것이 풍습이었다. 그리고 등잔불이 꺼지는 것이었다.
 맞선을 보는 일반적인 방법은 총각이 부친과 중매쟁이 모두가 처녀, 규수(閨秀) 집을 날 잡아(손이 없는 날) 방문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규수의 부친과 수인사를 하고 좌정한 뒤, 중매쟁이의 허풍과 수다를 들으며 규수의 아버지가 딸을 불러 ‘물 한 대접 떠 오너라’고 하면서 규수를 무대에 등장 시키는 것이다. 이때 총각이 약간은 긴장된 눈빛으로 훔쳐보듯이 슬쩍 얼굴을 보는 것으로 ‘맞선’이 끝난다. 규수는 얼굴도 못 들고 물대접이 놓인 쟁반에서 물 대접을 어른들 앞에 놓고 뒷걸음으로 자리를 물어난다. 총각 처녀 두 사람이 어른들 앞에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다. 지금은 서로에게 핸드폰 번호를 알려주어 자기들끼리 자기들이 정한 장소에서 만난다. 총각의 부친은 규수의 발걸음, 머리 숙인 자세, 쟁반에서 물 대접을 내려놓는 모습 등을 태연한 척 뜯어보는 것이다. 동강 선생은 울산에 내려올 때마다, 또는 전보를 받고 내려와 이런 맞선을 보았다. 그것도 대 여섯 번을 보고서 이런 것을 두고 ‘인연(因緣)’이라고 한다면서 결혼을 하였다. 그러나 서울대학교 동기생들이 신랑 다루기를 벼르고 있었음을 동강 선생은 모르고 있었다.

글 / 박해룡


▶[프롤로그]
▶[제1화] 슈바이처를 꿈꾸다
▶[제2화] 동강 선생의 제자
▶[제3화] 어머니의 자장가
▶[제4화] 법도 있는 집안
▶[제5화] 보통학교, 소학교, 국민학교, 초등학교(1)
▶[제6화] 보통학교, 소학교, 국민학교, 초등학교(2)
▶[제7화] 보통학교, 소학교, 국민학교, 초등학교(3)
▶[제8화] 경성 제2고등보통학교
▶[제9화] 경성 제2고등보통학교
▶[제10화] 경성 제2고등보통학교
▶[제11화] 경성 제2고등보통학교
▶[제12화] 경성 제2고등보통학교
▶[제13화] 서울대의예과
▶[제14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제15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제16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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