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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박영철 동강의료재단 이사장 일대기 2008/6/30
언론사 울산제일일보 작성일 2008-06-30 조회 64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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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아, 철아, 우리 철아”


제15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미국 대사관서 번역 야간아르바이트 시작
경복중학 시설 문학적 바탕·소양 도움돼

 ‘선후배들과 동기들이 학생 식당에서 점심을 먹는 동안 나는 팥빵이 가득 담긴 상자를 어깨에 맨 채 마른 침을 삼켰고, 장사가 끝난 후에야 팔고 남은 빵으로 주린 배를 채웠다. 눈물 젖은 빵을 꾸역꾸역 삼키며 장사를 했지만 늘 변변찮은 수입으로 전전긍긍하고 있을 때, 뜻밖의 제의가 들어왔다.
 팥빵장사로는 도저히 등록금을 댈 수 없었던 나의 딱한 처지를 하늘이 도운 것일까. 선배의 주선으로 미국 대사관 번역부에서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다.’
 외국어의 번역은 단순한 그 나라 말의 뜻을 우리말로 옮겨 적는 일이 아니다. 앞뒤 문맥에 맞추어 적절한 낱말을 바르게 선택하는 능력이 있어야 제대로 된 번역을 할 수 있다. 여기에는 문학적 기초가 있어야 한다. 소설가이면서 번역가이기도 한 이윤기(1947~)의 번역이 호평을 받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동강 선생이 경복중학 시절에 문학적 바탕과 소양을 쌓은 덕을 본 것이다.
 동강 선생 자신이 문학을 좋아하고, 소질이 있음을 경복중학 시절에 스스로 느끼고 있었지만 사실은 더 어려서부터 문학적 감수성이 길러져 있었다.
 당시로서는 중병에 가까운 늑막염을 앓으며 초등학교 시절 집에서 몇 개월을 보낸 것이 결정적 시기(決定的 時期)이었다. 그 때 벌서 고독을 씹을 줄 알았다.
 문학에서 작가의 고독은 사유(思惟)를 낳게 하는 토양이다. 어린 동강 선생이 늑막염을 앓으며 신경이 예민해져 신경쇠약을 앓기까지 했다. 늑막염을 떨쳐낸 어느 여름, 어머니 옆에서 평상에 누워 밤하늘을 쳐다보다가 ‘유독 외로이 떨어져 홀로 빛나던 별 하나가 내 가슴에 내려앉았다. … 감수성 예민한 소년의 별 바라보기는 여름이 다 가도록 계속되었다.’
 ‘외로운 별 하나에 온통 마음을 뺏긴 소년이 밤마다 하늘을 향해 손을 뻗어보던 아름다운 시간들은 모래알처럼 많은 내 일생의 시간들 중 가장 아름다운 기억이 되었다.
 어릴 때부터 너무나 허약했던 나의 소년기는 신경쇠약이 연속된 비정상적인 여건 속에서 지나온 것도 같다. 말하자면 정상적인 또래의 소년이 아니었고, 때때로 잠을 이루지 못한 날이 많았고, 홀로 지낸 시간도 많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열 살이 조금 넘었을 어린 소년이 이러한 고독을 씁쓸하게 맛을 보았기 때문에 서울의 경복중학교 시절에 문학에 빠졌고, 전국중학생 작문대회에 나가 당당히 입상했다. 이것은 일본 문부성이 주관하는 행사이었다. 외국어 경시대회에 나가 입상한 것과 같은 것이다.
 ‘내가 문학을 좋아하고 그쪽에 소질이 있음을 깨달은 것도 그 무렵이다.
 특히 이와나미(岩波 文庫, 당시 값 싼 문고판 출판물, 우리나라에서는 50년 전 삼성문고가 널리 보급되었었다)에서 나온 책들을 탐독했는데, 소설책 읽는 재미에 빠져 수업 중에도 책상 밑에 숨겨두고 정신을 빼놓은 채 읽다가 선생님에게 들켜 혼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글 / 박해룡


▶[프롤로그]
▶[제1화] 슈바이처를 꿈꾸다
▶[제2화] 동강 선생의 제자
▶[제3화] 어머니의 자장가
▶[제4화] 법도 있는 집안
▶[제5화] 보통학교, 소학교, 국민학교, 초등학교(1)
▶[제6화] 보통학교, 소학교, 국민학교, 초등학교(2)
▶[제7화] 보통학교, 소학교, 국민학교, 초등학교(3)
▶[제8화] 경성 제2고등보통학교
▶[제9화] 경성 제2고등보통학교
▶[제10화] 경성 제2고등보통학교
▶[제11화] 경성 제2고등보통학교
▶[제12화] 경성 제2고등보통학교
▶[제13화] 서울대의예과
▶[제14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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