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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박영철 동강의료재단 이사장 일대기 2008/6/16
언론사 울산제일일보 작성일 2008-06-16 조회 64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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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아, 철아, 우리 철아”



글 / 박해룡




동강 선생의 중학교 시절 모습.  

제9화 경성 제2고등보통학교  “울산 촌놈” 서울내기들 무시  첫 시험 학년 수석 본때 보여  ‘수재’ 유명세 선배들이 아껴  부잣집의 귀한 장손이 기숙사 생활을 어떻게 적응했기에 다음과 같은 회상을 할 수 있었을까? 공부하는 습관, 잠자는 습관이 바뀌어 여간 힘들지 않았을 터인데 이것을 극복하였다. 또한 주말이면 창경원의 동물원 구경, 남산의 서울시내 전망 구경, 덕수궁, 화신 백화점, 그리고 전차 타고 왕십리, 한강 백사장 등등 놀러 다닐 곳이 정말 많았는데, 이런 유혹을 보통학교 1학년 때의 그 의지력으로 참아내었다.  ‘울산 촌놈이 서울의 수재들과 섞여 경쟁을 하게 되자 서울내기들은 나를 무시하며, 신기하게 대했지만 첫 시험을 치른 후부터 사정이 달라졌다. 같은 학교, 같은 학번이지만 은근히 촌놈이라고 무시하던 그들이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내 성적표를 보고 시골에서 수재가 올라왔다며 놀라워했고, 선생들 사이에서도 단박에 유명인사가 되었다.’  당시에는 일본어로 국어 수업을 하였으니 동강 선생이 경상도 억양으로 국어 교과서를 읽으면 꼭 일본학생이 읽는 것과 같았다. 동강 선생이 머리가 좋아서 잘 읽은 것도 있었지만 경상도 억양이 일본 말 억양과 비슷하여 교내에서 일본 말을 해야 하는 억압된 생활에서 크게 불편함이 없었다. 지금 울산에서 태어난 울산 토박이가 서울에서 중학교를 다닌다면 필시 학생들이 특이한 억양이라고 놀려대고, 정말 촌놈 대접을 하여 학업에 약간의 지장을 주었을 것이다. 짓궂은 국어 선생님은 서울말의 억양과 경상도 말의 억양을 비교시키려고 장난스럽게 국어시간에 많은 학생들 앞에서 읽기도 시켰을 것이다. 하여간 동강 선생은 입학하자마자 학년 수석을 하였다. 소문은 빨라서 기숙사 학생들도 동강 선생의 실력을 인정 해주었다. 물론 상급생의 하급생(후배) 다루기도 다른 학생들에 비해 적었다. 당시 제2고보(경복고등학교)는 유도부가 유명했고, 선배와 후배들 사이의 계율(戒律)이 가장 엄하기로 소문이 나 있었던 시절이다. 쉬운 예로 기숙사 선배들의 양말을 후배들이 빨아주는 것은 기본이었다. 이것을 안 하면 선배들이 자기 반으로 불러다 기합을 준다거나 몰매를 주던 시절이었다. 이런 일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특혜는 울산 촌놈이 공부를 잘한다는 것에서 나왔다. 그러면서 학업에 자신이 생긴 동강 선생(학생)은 문제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故 박영철 동강의료재단 이사장 일대기 [프롤로그] ▶故 박영철 동강의료재단 이사장 일대기 [제1화 슈바이처를 꿈꾸다] ▶故 박영철 동강의료재단 이사장 일대기 [제2화 동강 선생의 제자] ▶故 박영철 동강의료재단 이사장 일대기 [제3화 어머니의 자장가] ▶故 박영철 동강의료재단 이사장 일대기 [제4화 법도 있는 집안] ▶故 박영철 동강의료재단 이사장 일대기 [제5화 보통학교, 소학교, 국민학교, 초등학교(1)] ▶故 박영철 동강의료재단 이사장 일대기 [제6화 보통학교, 소학교, 국민학교, 초등학교(2)] ▶故 박영철 동강의료재단 이사장 일대기 [제7화 보통학교, 소학교, 국민학교, 초등학교(3)] ▶故 박영철 동강의료재단 이사장 일대기 [제8화 경성 제2고등보통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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