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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시론 - 진정한 공부 ; 윤성문 동강병원장
언론사 경상일보 작성일 2007-11-28 조회 65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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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공부


 지난 주, 아침 뉴스 시간에 수능을 보러가는 고등학생들의 모습을 보면서, <스펀지>라는 프로그램에서 했던 재미있는 실험이 생각났다.
 어느 고등학생이 의뢰한 것으로, '왜 자신의 성적이 친구의 성적보다 낮게 나오는가.' 에 대한 실험이었다. 생활기록부로 확인해 보니, 두 사람의 아이큐는 거의 비슷하였고, 수업시간 태도도 누가 나쁘다 할 것 없이 좋았다. 공부 시간도 거의 비슷했다. 더욱이 성적이 더 잘 나오는 학생의 경우, 공부에 방해가 될 것이라 생각되는 팝송을 들으며 공부한 반면, 실험을 의뢰한 학생은 마음이 차분해지는 클래식을 들으면서 공부했다. 단 한 가지 차이점이 있다면, 문제를 의뢰한 학생은 밤 시간에 공부를 하는데 비해, 성적이 높은 학생은 새벽에 일어나서 공부를 한다는 것이었다. 사람마다 체질이 다르기 때문에 '새벽공부'가 모두에게 효과가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아침 일찍 일어나 두뇌를 맑게 하는 습관이 공부의 마음가짐에 많은 영향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남명 조식(南冥 曺植, 1501-1571) 선생은 16세기 조선의 정치 현실 속에서 처사(處士)를 자처하셨던 큰 선비이다. 출세를 위해 나서기 보다는 지리산 한 자락에 은거하며, 마음과 몸을 올바르게 다스리고, 보다 큰 도(道)에 다가서기 위해 공부하셨다. 그래서 선생님의 <남명집(南冥集)>이라는 책에는, 자신을 다스리는 진정한 공부에 대한 이야기가 들어있다.
 공부에 대한 일화 중에는, 조광조의 스승인 김굉필(金宏弼) 선생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김굉필 선생은 아침 첫 닭이 울 때, 친구와 함께 정좌하고 콧숨을 헤아리는 수련을 하셨다고 한다. 다른 친구들은 곧 자세가 흐트러지거나 집중하지 못하였지만, 선생을 아주 오랜 시간 호흡에 집중하며 아침 해가 밝아올 때까지 자세를 흩트리지 않으셨다고 한다. 그러한 호흡 훈련을 통해 어지러운 정치상황 속에서도 정신을 맑게 하고, 자신을 잃지 않는 힘을 기르셨던 것이다. 실제로 늘 하는 숨쉬기임에도 불구하고, 정신을 맑게 하고 오로지 '숨을 쉬는 행위'에만 집중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마음은 세상의 이치를 이해하고, 몸은 그 마음을 담는 그릇이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이 맑지 않으면 새로운 이치를 깨달을 수 없고, 몸이 허물어지면 받아들인 이치를 올곧게 실천할 수 없다.
 '우레 같은 소리를 내려면 몸을 깊이 감추고 있어야 하며, 용 같은 모습을 드러내려면 바다처럼 깊이 침잠해야 한다.'
 지식을 얻어 머리에 단순히 저장하기 위해서, 혹은 시류에 맞추어 자신의 유능함을 드러내기 위해서 하는 공부는 우레와 같은 소리를 내지 못한다.
 남명 조식 선생은 그것을 미리부터 경고하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을 닦는 공부를 하면서도, 잘못된 일을 보면 목숨을 아깝게 여기지 않을 수 있는 용기와 지조를 세우는 것이 한 사람의 인생을 건 공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수능시험을 치러낸 아이들을 보며 대견하기도 하고, 한편 안쓰럽기도 했다. 지금의 젊은이들은 조선시대의 사화(士禍)에 비견할 만큼 올곧지 못한 교육제도 속에서도 열심히 공부하여, 다음 단계의 공부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급변하는 교육제도 속에서 변치 않는 것이 있다면 오랜 공부의 결과가 한 번의 시험으로 결정되는 부조리함이다.
 지나치게 '공부의 결과'에만 집착하고, '공부의 과정'과 '공부의 자세'에 대해서는 소홀하게 치부하고 마는 것이다. 대학입시를 치른다고 공부가 끝나는 것이 아니고, 그 성패에 의해 인생의 성공이 결정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그것보다는 평생 동안 '겸손하게 배우면서 살아나가는 힘'을 기르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공부일 것이다. 정직한 공부의 과정과, 몸과 마음을 다스리는 공부의 자세를 통해 얻은 소득의 일부가 '공부의 결과'일 뿐인 것이다.

윤성문 동강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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